가을헌화가
⊙정평림⊙
벼랑 끝 바윗자락 갓털로나 닿았을까
굽어봐도 천야만야 갈 곳 없는 쑥부쟁이
실눈썹 등산 여인이 저 꽃 그리 탐한다지
낯 붉힌 눈길만큼 부끄릴 이 가뭇없고
고개 숙인 촌로 하나 낌새 하마 차렸는지
한 아름 가을을 엮어 먼 발치에 두고 가네
벼룻길 여린 햇귀 빗금 치듯 뜸이 들고
잡은 손 암소 놓고 신라 천년 감아오나
우수수 나는 꽃씨가 수로부인 뒤를 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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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림=(1938~ )강원도 평창 출생
「시조시학」신인상 수상 (2003년),「샘터」시조상 수상 (2003년)
「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2004년)
시조집 「거기 산이 있었네」(동학사, 2005년)
현재) 인하대 의대 교수, 한국문인협회 회원, 열린시조학회 회장
수수한 쑥부쟁이께로도 가을볕이 영근다. '천야만야 갈 곳 없는' 꽃들도 가슴 떨며 기다릴까.
게서 나고 자란 '쑥부쟁이'나 '등산 여인'이나 흔히 만나기는 매한가지. 하지만 꽃을 꺾어다 바
치는 순간 둘은 귀한 존재가 된다. 아니 헌화의 손까지 합하면 셋이 새로운 빛을 얻는 것이다.
수로부인에게 꽃 바친 노인의 '헌화가'. '잡은 손 암소 놓고'에 앉힌 '헌화'가 가을 속에 그윽하
다. 바야흐로 한가위니 헌화가야 많을수록 좋겠다. 집집이 차례 모시느라 분주한 '부인'들에
게 꽃 바치는 손 많아지면 웃음꽃도 환히 피리. 쑥부쟁이는 성묘길에도 많이 만나는 꽃. 오늘
을 웃게 해주는 이에게 그리고 그리던 무덤에게 꽃 바치는 마음이면 한가위 달도 더 널리 빛
나리.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