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구불구불 물소리 바위로 들어가고
구불구불 굽은 뼈 벼랑으로 들어가고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바라보네 바라보네
이 밤
살아 있는 것들 모두 거룩해질 때까지
-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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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1945~) 함남 홍원에서 출생.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 〈순례자의 잠〉 등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바람 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등 다수 있음.
산문집 『허무수첩』, 『추억제』, 『그물사이로』 등과
동화로 『숲의 시인 하늘이』, 『하늘이와 거위』 등이 있음.
제2회 한국문학작가상과 제37회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깊은 밤 물소리에 몸이 젖을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몸이 지워져가는 것 같기
도 합니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헛된 욕망을 소화하지 못한 위장이 물소리에 씻
겨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제 그만 얼룩 묻은 사람은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맑은 사람에 젖어들어야겠지요. 물소리
에 가만히 기대앉아 보는 건 어떨까요. 살아 있는 한 사람을 씻으며 거룩해지는 시간을 살
아보는 건 어떨까요.
김민율 시인(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hankyung.com/201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