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동준비
◆최영미◆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는 도시의 불빛.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
애인을 잡지 못한 늙은 처녀들이 미장원에 앉아 머리를 태운다 지독한 약품냄새를 맡으며 점화되지 못한 욕망.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구나 내 머리에 손댄 남자는 없었어. 남자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머리를 매만지며 안개처럼 번지는 수다…… 겨울을 견딜 스타일을 완성하고 거울을 본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하나의 혁명이던 때가 있었다. 생머리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표식이던, 단순한 시대가……
---------------------------------------------------------------
▶최영미=(1961∼ )(서울) 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서양미술사 석사과정수료. 1992년<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等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쓰여서 시원시원 쉽게 공감이 가는 시다. 햇살 가닥에도 한기가
배어들기 시작하니, 또 한 해가 기우는 서슬에 늙은 처녀들 가슴이 철렁, 처연하고도 아연
해지리라. 기우뚱, 처지는 여인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엔 미장원만 한 데가 없다. 머리에 탄
력을 받고 화사함을 되찾은 거울 속 제 모습에 결기를 다지리. 겨울이여, 물렀거라!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이라고 까칠하게 정곡을 찌르는 게 최영미답다. 누구를 만나
도, 혼자 있어도, 우리는 외로운 개별자다. 그 원초적 고독을 잘 알지만, 그립고 외로운 걸
어쩌랴. 늙은 처녀들만큼이나 이 계절이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없었어’, 늙은 총각들은 탄식하리. 여자들이 미장원을 갈 때 그들은
어디를 갈까? 여자들이 거울을 볼 때 남자들은 아마도 통장 잔고를 보리.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022> dongA.com/2012-11-02
http://blog.daum.net/kdm2141/594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