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릿저릿한 첫사랑
◆권혁웅◆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하필이면 오른손에 왔다
새벽 기도 20년 만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되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깜깜 어둠이 악수를 건네려는 건지,
사방이 인적 끊긴 놀이터가 되었다
이제 단풍놀이 가는 버스 안에서
막춤을 출 수도 없게 되었다 <중략>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행주 잡은 손으로 풀러그를 뽑은 것처럼
스치기만 해도 저릿저릿하다고 한다
처음 집 앞 놀이터로 아버지가 찾아왔던
57년 전과 똑같다고
그때 스친 손끝 같다고 한다
다소곳한 고개를
다시 들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권혁웅 作 ＜첫사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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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1967~ )충북 충주에서 출생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가 있고, 『두근두근』, 『꼬리 치는
당신』 등의 산문집과, 『미래파』, 『입술에 묻은 이름』,
『당신을 읽는 시간』 등의 평론집과 해설집을 펴냄.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을 받았다.
■ 늙은 어머니에게 어느 날 목 디스크가 찾아온다. 온갖 힘든 시간을 이겨냈을 어머니의 오른손이 목 디스크 앞에 무너져내렸다. 이제 어머니의 손은 예전의 그 손이 아니다. 시인은 아들로서의 안타까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숙명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일생을 '저릿저릿한 오른손'에 빚대어 써내려간다.
그렇다. 어머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시인의 사유는 57년 전으로 돌아간다.57년 전 손끝을 스친 그 인연으로 어머니는 사랑을 했고, 시인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 그 오른손은 행주를 들기도 힘든 손이 되어버렸다. 세월은 그렇게 야속하게 흘러갔다. 기억하자. 우리 어머니들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허연 문화부장(시인)][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