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속
◈릴케◈
어디가 이 속에 대한 밖인가요?
어떤 아픔 위에 그 아마의 천을 놓습니까?
어떤 하늘이 이 열린 장미의
이 무사무념(無思無念)의 장미꽃 호수 속에서
비추이고 있습니까. 보십시오.
장미꽃들은
떨리는 손으로 결코 헝클어트릴 수 없다는 듯
풀어져 흐트러져 있군요
장미꽃들은 제 몸들을 제가 가누지 못합니다.
너무 넘치거나 그 속의 공간에서 흘러나와
갈수록 쨍쨍한 대낮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온 여름을 한 칸의 방으로 만든답니다.
꿈속의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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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고독한 소년 시절
을 보낸 후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하였다. 프라하·뮌헨·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일찍부터 꿈과 동경이 넘치는 섬세한 서정시를 썼다
릴케는 다른 글에서 아네모네 꽃을 보고 “낮에 얼마나 활짝 피었는지 꽃은 밤이 되어도 스스
로를 닫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시에서 장미는 너무 열려서 속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다.
그것은 완전히 열어서 “무사무념”의 상태에 이르렀으며, 너무 열어서 더 이상 흐트러질 수
가 없다.
너무 넘쳐서 “온 여름을” “꿈속의 방”으로 만들고, 세상의 “아픔”을 꽃잎(“아마의 천”)으로
덮는다. 역설적이게도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