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를 터는 저녁
◈이윤학◈
구장네 아줌마 둘이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깨를 턴 포장에서 뒹굴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울었다
누레진 들깨 토매를 털었듯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산의 멧비둘기가 시원하게 속을 긁었다
벌써부터 구장의 프라이드 베타가
산모롱이에 정차해 있었다
아줌마 둘이서 바람을 등지고
들깨를 까부르는 소리 키로 쏟아졌다
티끌 하나 없이 흡혈하는 하늘
들깨를 턴 냄새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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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1965~ )충남 홍성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먼지의 집』,『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등.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던 아줌마들이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우는 풍경은 우리에게
바흐친 스타일의 ‘민중적 웃음’을 유발시킨다. 싸움의 귀결을 잘 알고 있는 “구장”은 그것을
벌써부터 보고도 부러 개입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싸움→울음→노동의 사이클에 익숙하다. 짧은 시간에 함께 싸우고, 울고, 다시
협업을 하는 공동체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서로를 바닥까지 알지 않고는 불
가능한 모습 아닌가. ‘들깨를 터는 저녁’은 그리하여 궁핍하지만 아늑하고도 그리운 서사
(敍事)를 떠올리게 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