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거
◈ 임태진◈
시골은 한낮에도 한밤인 듯 적막하다
개날에 한번 닭날에 한번 순찰하듯 들르면
어머닌
잠들어 계시고
TV 혼자 떠들고 있다
-어머니 텔레비소리 시끄럽지 않으꽈?
-혼자 시난 벗 삼아 느량 틀어 노암쪄
고향엔
구순 노모가
바보상자와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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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진=(1963~ ) 제주 중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2011 영주신춘문예 시조 당선 으로 등단
정드리문학회 회원, 효돈119센터 근무(현재)
'느량'은 '늘'의 제주어지만 설명 없이도 알 만하다. 토박이들의 토속어 대화는 외국어 같건만
시에서는 사투리가 말맛을 제대로 살린다. 지금쯤 노란 꽃밭이 되었을 유채꽃섬 곳곳 올레에
는 한껏 물든 제주말들이 바람을 타고 넘나들겠다.
몸값이 날로 치솟는 제주도. 중국인 등 외지인이 몰려들며 외국어도 심심찮게 오가는 국제
적섬이 됐다. 하지만 마을 어딘가에는 여전히 'TV 혼자' 떠드는 집이 있다. '한낮에도 한밤
인듯 적막'하니 TV나 '벗 삼아 느량 틀어' 놓는 여생. 마을이 통째 사라져가는 판에 그나마
도 아직은 나은 편이랄까.
'구순 노모가' TV와 동거 중인 시골집. 소방수 아들은 가끔 '순찰하듯' 들여다볼 뿐, 딱히 꺼
드릴 게 없나 보다. 순찰이라도 구순히 할 수 있어 다행이겠지만…. 졸음 늘어지는 봄날, 뒤
따르는 꽃바람 순찰에 향도 한층 깊어지리.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