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꽃 봉분
◈유 헌◈
애써 몸 세우려고
기대서지 않았다
단물 다 내어주고
심지까지 다 뽑히고
밟히고 베이면서도
산기슭 지켜왔다
바람에 맞서지도
피하지도 아니하고
찬 이슬로 꽃을 피워
윤슬처럼 반짝이며
은발로 다녀가시는
울 어머니, 하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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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헌=(1957~ ) 전남 장흥 출생
2011년 '月刊文學' 신인상과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제9회 시조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2015년). 시집 '받침 없는 편지'.
제26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현재 목포MBC 국장
삐비순은 추억의 먹거리다. 삐비꽃 어린 순이 나올 때면 그것을 쏘옥 뽑아 잘근잘근 씹고는
했다. 어린 순들이 그렇듯 조금은 비릿하면서도 달달한 물이 나왔다. 시골 아이들은 거개가
그 삐비순을 찾아 언덕이나 냇가 둑쯤 뒤져봤을 것이다.
뾰족뾰족 순도 예쁘게 솟지만 아이들 손 타지 않은 순이 꽃을 피우면 한동안 은물결이 곱다.
나직한 풀꽃들이 신록 사이 은빛 파동을 나른히 나르는 것이다.그런 중에 삐비꽃 핀 무덤도
더러 있었다. 자손이 돌보지 못한 무덤일수록 삐비꽃이 우쭐거렸다.
여기서 '삐비꽃 봉분'은 그와 달리 어머니의 은유지만 말이다. '단물 다 내어주고/심지까지
다뽑히고' 그래도 한결같이 삶의 '기슭을 지켜' 온 '울 어머니'. 그렇게 헌신한 이 땅의 어머
니들이 있어 오늘도 꽃이 핀다.삐비꽃이 한창 필 때다. 들에 나가 맞아야겠다. '은발로 다녀
가시는' 뒷모습….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