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에 어린 서정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중략)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송수권 作 <까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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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山門에 기대어(문학사상사), 꿈꾸는 섬
아도(啞陶),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10시집파천무 등
시선집 지리산 뻐꾹새, 들꽃세상(토속꽃), 여승, 육필시선집
초록의 감옥, 산문집 만다라의 바다, 태산풍류와 섬진강,
남도기행 등. 음식문화 기행집 남도의 맛과 멋, 시인 송수권의
풍류맛기행 등.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
■ 서울 조카들이 감나무에 남겨놓은 까치밥을 따려고 했던 모양이다. 어린아이들이 까치밥
에 담긴 깊은 뜻을 알고 있을 리 만무다. 이 모습을 본 시인은 노래한다. "남도의 빈 겨울 하
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하겠냐"고, 그러니 까치밥을 따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상상력의 폭을 확장해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몇 개의 감나무 열매가 아니라 날짐
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따뜻한 등불이라고. 더 나아가 그대들 어린 생명들이 살아가야 할 세
상까지 따뜻하게 비추어주는 존재라고….
남녘의 정취와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멋지게 조화된 작품이다. 더 나아가 생명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가치까지 알려주는 교훈도 함께 담고 있다. 남도의 서정을 노래해온 송수권 시인
은 지난 4월 초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따뜻한 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
돈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허연 문화부장(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