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불
◈유안진◈
쌈지공원 벤치에 길게 누운 누굴까
추락 탈선 화재 충돌… 아우성치는 신문을 덮고도
코나팔 불어가면서 쏴다니는 단잠세상은 어딜까
코나팔 곡조 맞춰 얼굴이불도 들썩거린다
옆자리 할머니들도 손 마스크 하며 웃고
유모차 내린 아기도 까치발로 걷는데
난데없는 우레 번개는 팡파르에 조명탄까지라
달려와 베갯머리부터 서둘러 정리한다
책이불 다 걷어내고 묶은 신문지 수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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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1941~ )경북 안동에서 출생.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 1970년 첫시집 『달하』를 간행한 이후
『물로 바람으로』(1975) 『월령가 쑥대머리>(1990),
<봄비 한 주머니>(2000) 등 1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
한국펜문학상(1996), 정지용문학상(1998), 월탄문학상(2000)
등을 수상.
'얼굴이불'… 뭐든 얼굴을 덮으면 그게 얼굴이불이겠다. '아우성치는 신문을 덮고도/코나팔
불어가'며 잠든 저들은 누구의 가족일까. 무슨 이름 하나씩 붙여 가족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오월이라 그런 모습도 더 밟힌다. 가족은 어디 두고 공원에서 안하무인 '단잠'에 들었을까.
'코나팔 곡조 맞춰' 들썩거리는 '얼굴이불'. 웃음을 깨물며 에둘러도 짠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을 정리하는 '난데없는 우레 번개'. 곧바로 '책이불 다 걷어내고' 보니 '묶
은 신문지'만 '수북'하다. 그 '아우성' 신문지들이 다 우리의 얼굴이불이었던가. 또 다른 자화
상만 같은 도처의 얼굴이불이 뜨끈하다. 후안무치(厚顔無恥)마다 씌우고 싶었건만….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