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월
◈이상국◈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종일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며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 양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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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1946∼ )강원 양양군 출생
1976년 심상지 시 '겨울추상화' 발표 데뮈
시집 <동해별곡.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유심작품상. 강원민족예술상.
남쪽 들녘에서는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일이 한창이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했으니 이즈음 농가에는 일손이 턱없이 모자란다.
곧 유월이다. 시인은 유월을 산야에 숨어 사는 사람에 빗댄다. 숨어 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이 눈치 못 채게 쓱 지나간다고 말한다. 유월은 포근하게 감싸 안기듯 오목한 새의 둥지 같
고, 또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조용하다.
흰 구름은 하늘로 둥둥 떠가고 계곡의 물소리와 초여름 산의 푸른 산그늘은 마을로 내려온
다. 다가오는 유월에는 '풀과 벌레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환한 물소리에 몸을 씻'고 싶다.
살구와 자두의 알이 굵어지고, 채반에 들밥을 이고 가는 이의 마음이 바빠 걸음도 빨라지는
달이 유월이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