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레
◈이병초◈
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
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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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1963~ ) 전주출생,
1998년 「시안」 신인상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 '이 당선돼 작품활동
시집 「밤비」「살구꽃 피고」가 있다.
제2회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써레질하는 모습을 보기가 귀해졌지만 예전에는 모내는 때만 되면 무논에서 소가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끄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물론 그 무논에는 고삐를 당겨 '이랴 이랴' 소를 몰
고, '워워' 소리를 내 소를 세우던 아버지도 계셨다.
시인은 여름 한철을 과수원에서 보낸다. 달큼하게 잘 익은 복숭아를 얻어먹고, 대신 오이
순을 들어 올려 자라게 해주거나 아궁이의 재를 퍼 잿간에 날라다 주면서 큰 걱정이나 개
의할 일 없이 지낸다.
그러다 우연히 써레에 눈길이 간다. 써레는 논바닥을 고르느라 이제 써레날이 빠져 있다.
논과 밭에서 평생을 살아오느라 몸이 늙고, 또 탈이 나 병을 앓게 된 농부처럼 말이다. 몸
을 써 온 그 써레를 시인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문태준 시인[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