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비애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 作 <북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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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1954~ )1977년 시 〈비발디〉시단에 데뷔
시집《대설주의보》《반딧불 보호구역》《모래인간》《아메바》
산문집《달마의 침묵》《시인의 사랑》
「오늘의 작가상」,「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을 수상
■ 읽고 또 읽게 된다. 나란히 꼬챙이 꿰어 식료품점에 매달려 있는 북어에서 현대인의 비애
를 끌어낸 부분이 압권이다.북어들이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을 향해 "거봐, 너도 북어지"
라고 말하는 부분은 너무 생생해서 소름이 돋는다.
그러고 보니 북어들은 모두 무슨 말을 하려는듯 입을 벌리고 있다도시문명의 이면을 그리는
데 있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작품을 써온 최승호 시인의 대표작이다. 식료품점에 매달려
있는 북어처럼 살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자신의 색깔에 자부심을 갖고, 아울러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일.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몰개성의 시대라는 현대사회를 이토록 적절하게 그려낸 시는 일찍
이 본 적이 없다.
[허연 문화부장(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