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늘
◈이정모◈
입은 다물고 드러내기만 하는 생이
기다림의 무게를 척 펼쳐 놓는다
거친 숨소리만 남은 길에서
문득 고개 돌려 뒤를 보면
다시는 못 온다 밑바닥을 깔고 계시는 분
어차피 경계란 바람의 몫인데
어디까지 가시려나
온 몸을 열어 펄펄 끓는 시간을 불러 앉히는데
땀을 다 써버린 여름이 울컥 바람을 쏟아내면 뭣해
할 말 다 못해도 참아야 맛이라고
여기를 떠날 기분이 아니라는데
내가 흘려버린 한 줌 시간에서도
새로운 우주는 기다렸을까
멀리서도 아는 체 하는 것 같아
다가서면 일어서지도 않고 묵묵부답
스님의 뒷모습 쪽으로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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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2007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제 몸이 통로다><기억의 귀>외. .
한국문인협회 회원. 웹진 ≪젊은 시인들≫ 동인.
< 시작 노트 >
플라톤적 관점에서 본다면, 시 쓰기란 그림자극이다. 풍경과 언어 사이에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낯설고, 해체되기 십상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의미 이전의 상상
과 그 속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한다. 이때 자기 만족은 고백이고 쾌감이다.
산사에 있을 때 왔던 손님을 이제야 맞이하는 깨달음이다. 견성은 하지 못하고 관찰한 날의
오래된 눈길이다. 그때의 기억이 시간의 옷을 입고 흔적을 재현한다. 백 년 만의 폭염을 가
려줄 그늘이 독자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kookje.co.kr/201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