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곽재구◈
먹감색의
작은 호수 위로
여름 햇살
싱싱하다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엄마가 어디 가셨니?
엄마가 어디 가셨니?
별이 초롱초롱한 밤이면
그중의 한 나무가
배고픈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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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1954~ )시인, 아동문학가. 광주 출생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당선. <5월시> 동인.
시집에 『사평역에서』(1983),『전장포 아리랑』(1985),『한국의 연인
들』(1986), 『서울 세노야』(1990) 등 주요작으로 「복종」 「첫눈 오
는 날」「참 맑은 물살」「새벽편지」「구진포에서」「새벽을 위하여」
「대인동 1」「칠석날」「수선화 핀 언덕」등이 있으며, 기행문으로
『포구 기행』등 신동엽 창작기금, 동서문학상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무화과나무는 열매 속에서 꽃이 피어 겉으로는 꽃 피는 것을 볼 수 없는 나무다. 그래서 꽃
시절이 없는 나무라고 흔히 일컬어진다. 마당에 무화과나무가 있어서, 그 무화과나무 열매
는 아이의 주먹만 하고, 또 밥 덩어리 같기도 했을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여름날의 싱싱한 햇살을 먹고 자란다. (햇살이 나무들의 '흰밥'이라니 멋진
말씀이다.) 아이는 무화과나무의 너른 그늘과 큼직한 열매를 보면서 나무가 배부르다고 느
꼈을 것이다.
집에 홀로 남겨진, 배고픈 아이에게 나무가 묻는다. 엄마가 일을 나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
았냐고. 허기가 진 아이는 여름밤 하늘을 가득 채운 초롱초롱하고, 싱싱한 별들을 바라보
며 그것들을 꿈을 키우는 밥으로 삼았을 것이다. 별을 깨물면 얼음 조각처럼 차고 입안이
얼얼해 어느새 허기도 가셨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