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
◈박성우◈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버린 초가을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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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1971~ )전북 정읍에서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으로 신동엽창작상(2007)수상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미역'이 당선되면서
동시집<불량꽃게>와 청소년 동시집<난 빨강>을 펴냈다.
지난해 4년 만에 시집<자두나무 정류장>을 출간했다
우체국을 하나 지어서 하루하루의 기쁘고 설레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부치고 싶어 하는 시인
이 여기 있다. 시인은 강마을에 살고 있다. 시인은 강가의 안개, 초가을 풋별 냄새, 싸락눈 내
리는 겨울밤을 편지 봉투에 담아 누군가에게 보내고자 한다.
요즘엔 잘 여문 낱낱의 밤알, 초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 멀리까지 나 있는 길을 바라보는 키
큰 미루나무의 기다림 같은 것을 봉투에 담아 부칠 수 있겠다. 한가위를 앞두고 점차 커지고
환해지는 달빛과 달빛이 눈부시게 모인 가을밤 고향집 마당과 낟알이 굵은 대추도 한 됫박
갓 따서 보낼 수 있겠다. 이러한 편지라면 받는 사람의 가슴속에 코스모스처럼 피어나겠다.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