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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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金顯承 1913∼1975)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34년 무렵부터 시작을 계속하다가 해방 직전부터 침묵을 지켰고,
6·25전쟁 직후부터 다시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숭일중학교 교감,
조선대·숭전대 교수,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감각적
언어망을 통한 참신한 서정으로 생의 예지를 추구한 시를 썼다.
제1회 전남문화상을 수상했다. 작품집 《김현승 시초》, 시로는 〈견
고한 고독〉, 〈옹호자의 노래〉, 〈절대 고독〉, 〈눈물〉 등이 있다.
1975년 4월 11일, 고혈압으로 인하여 향년 63세로 사망하였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 중
하나가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입니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 고독해지는 이들이 많습니다.
커피와 차를 좋아해서 다형(茶兄)이라고 불렸던 김현승 시인은 평생 고독과 눈물로 하나님
께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인은 “나의 본질은 고독이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 고독하다. 그러므로 고독감은 인간
의 자폐증이다. 따라서 고독감이 강할수록 인간의 영원과 무한에 대한 신앙은 강하게 되고,
신을 향하여 벌리는 팔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원죄의식을 기독
교정신으로 표출한 것이 고독이었습니다.
*‘아침에 읽는 시’는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이지현 선임기자 [아침에 읽는 시]
kmib.co.kr/201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