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눈빛
◈이철경◈
출근길 눈이 내린다
이미 검게 변한 질척거리는 차도에
차들이 미끌어질까, 온 발을
긴장하고 걷는 아이 같다
저 아이 같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세상을 걷지만
이내 바닥의 진창이 튀어
오그라든 마음에 검은 물이 든다
헛된 꿈들로 만신창이가 되어
한동안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잿빛 하늘, 뼈만 앙상한 독수리가
눈 쌓여 굶주린 새끼 노루를
죽일 듯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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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경=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시 전공)졸업
시집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북인, 2013년
제3회《목포문학상》시 평론 수상 계간《발견》시 신인상
계간 《포엠포엠》시 평론 신인상
■ ‘자신이 몹시 잘난 줄 안다. 을은 개, 돼지이기에 불평등한 신분제를 고착화 시켜야 한다
고 떠든다. 개인인 자신의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하여, 조직에 기대어 비열한행동을 하고
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
상대가 ‘을’이라고 생각 되면 손윗사람에게도 무례하게 대한다. 자신의 잘못을 ‘을’에게 떠넘
긴다.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고, 타당한 이유도 대지 않고 무조건 따르기만을 강요한다.’ 갑
질 하는 자들의 특성이다.
갑질은 염치(廉恥)를 파괴하는 파렴치(破廉恥)한 행동이다. 염치를 파괴하는 자는 인간을 목
적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보는 자이다. 권력이나 재력과 조직에 기대어 상대를 괴롭히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을에게 비열하고 공정하지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갑질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격모독이다.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갑질
하는 자들의 근거 없는 기득권 행사에 “온 발을/긴장하고 걷는 아이 같은” “조심스러운 걸음
으로/세상을 걷지만”, “갑의 눈빛”에 “오그라든 마음”으로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大學)의 혈구지도(?矩之道)에서는 ‘윗사람에게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 아랫사람을 부리
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 뒷사람을 이끌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 느꼈던 싫어하는 바로 왼쪽사람과 교유하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 느꼈던 싫
어하는 바로 오른쪽 사람과 교유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을 도구적 수단으로 보는 파
렴치한 자들의 갑질 횡포를 막으려면 사회 전체가 ‘갑질’하는 자들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하며, ‘도덕적 분노’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mhj21.com/201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