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 때면
◈조정권◈
찔레 향 머문 자리에
누군가의 마음이 먼저 문안을 드렸구나.
느껴지는 건 山보다 山 속의 어른.
이놈아 물통처럼 서 있지 말고
옛다, 이거나 받아라.
밭에서 난 장대비 한 아름 꺽어
내게 던진다.
젖은 고구마 잎사귀들 후두둑 쏟아진다.
-조정권 作 <그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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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1949~ )서울에서 출생.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
한 숲』등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가끔 혼자 산길을 걷다보면 어떤 영적인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무슨 신비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따라오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다.
산을 지배하는 뭔가 신성하고 거대한 눈이 나를 쳐다보는 듯한 생각이 들 때면 내 오만함은
금세 기가 꺾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는 표현보다 '산에 든다'는 표현을 더 좋아
하는지도 모르겠다. 산에 드는' 그 느낌을 잘 표현한 시다.
산속에 한 어른이 계시다는 상상력이 신선하다. 분명한 건 인간이 산의 주인은 아니라는 사
실이다. 아무리 산에 올라도 산은 우리 것이 아니다. 산은 산일 뿐이고, 산에는 그 어른이 사
신다.
[허연 문화전문 기자·시인] [시가 있는 월요일
mk.co.kr/201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