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두부
◈임 윤◈
하늘하늘 두부가 떠다닙니다
백양나무에 걸렸다 옥수숫대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구름알갱이 회오리치는 가마솥
목화솜처럼 뭉쳐서 두부가 됩니다
시든 호박꽃 가슴에 늘어뜨린 칠순 누이
나무주걱으로 구름을 떠 담아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남동생이 고봉 그릇을 뚝딱 비웁니다
배를 깔고 누운 어미 소
입가에 구름을 물고 되새김질 합니다
인진쑥 베어낸 자리에 가을이 내려앉고
기왓장 틈새 바위솔 군락도 입맛을 다시는데
금방 갈 걸 왜 왔냐며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상 물린 자형은 역정입니다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능선의 두부가 채송화처럼 붉고
서늘한 바람이 마당을 돌아 나간 뒤
두부가 떠다니던 하늘에 빼곡 들어찬 별들
나리꽃 활짝 핀 삽짝까지 따라왔다
뒤돌아서서 박명에 들썩이는 누이의 어깨
까무룩 떨어진 별빛 핑계로 오늘은 밤새 뒤척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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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1960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2007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
시집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수혜
〈시작노트〉
완연한 가을날.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나는 어디에서 무슨 욕망
에 사로잡혀 아직 방황하고 있는가.
kookje.co.kr/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