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方言) ―김성규(1977~ ) 점자를 읽듯 장님이 칼을 만진다 칼날에 피가 번진다 사람들이 소리 죽여 웃는다
칼은 따뜻하다! 자신이 새긴 글씨가 상처인 줄 모르고 기뻐하는 장님을 보라
쏟아지는 피를 손바닥으로 핥으며 자신도 모르는 글씨를 칼날에 새기고 있다
몸에서 잉크가 떨어질 때까지 더 빨리 더 빨리 마귀가 불러주는 주문을 온몸으로 받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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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 갔습니다. 사월이 가면서 힘껏 밀어 올리는 오월입니다. 오월, 신록이 찬란히 틔워 옵니다만 그와 함께 저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무서운 각본 같은 역사가 우리의 오월에는 있습니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우나 역사란 일어난 일의 기록이니 사실입니다. 눈뜬, 눈먼 자들이 저지른 역사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는지 우리는 압니다. 그것이 끝내 씻을 수 없이 커다란 죄악인 줄 모르고, '사람들 이 소리 죽여 웃는' 줄도 모르고 칼에 글씨를 새기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절 사진에는 긴 칼을 옆구리에 찬 '공권력'의 모습이 곧잘 등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그 시대가 어떠한 공포와 야만의 시공이었 는지 압니다. 그 칼에 그들의 피비린 역사를 새겼습니다만 그것은 '마귀'의 '주문'을 새긴 역사였으니 여전히 그들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젊은 시인의 이 무서운 시처럼 역사는 지나간 일의 기록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 그들처럼 알량한 유혹에 눈이 멀어 어리석게도 '마귀'의 '방언'을 '칼에 새기'는 일은 없는지 오월 햇빛의 명도(明度)로 둘러봅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Chosun.com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http://blog.daum.net/kdm2141/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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