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만큼 성숙(maturation)하는 걸까’, 성숙하게 되니까 현실이 아프게
느껴지는 걸까. 유모차를 미는 엄마 곁에서 “아기메꽃” 같은 여자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다. 세 돌이나 지났을까, 동생이 태어
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밀어주는 유모차 속에 있어도 될 분홍원피스의 여자아이
가 조그만 발로 종종거리며 세상의 길바닥을 걸어오고 있다.
상상할 수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을 누리던 자리에서 한순간 재투성이 하녀와
같은 위치로 굴러떨어져 내린 것 같은 심리적 박탈감을 엄마는 진정 알고는
있는 걸까? 동생이라는 조그만 생명이 엄마 곁에 오기 전까진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다.
엄마도, 아버지도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울면 슬퍼했으며, 내가 잠들어야
비로소 휴식에 들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느 날, 조그만 생명을 안고 온
엄마는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을 허락도 없이, 양해도 없이 조그만 생명에게 주어
버린 것이다. 왕좌에서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내려와 ‘폐위된 왕’의 심정을 엄마는
알기나 하는 걸까.
등을 돌린 채 아기에게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도닥여 주는 엄마가
서럽고, 동생이라는 조그만 생명체가 밉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질투와 미움과
서러움이 오가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면, ‘아픈 만큼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 등 뒤에서 외롭고 서럽게 훌쩍이고 있을 첫째에게 ‘속상하면 엄마한테
말해도 돼’ 라고 다독여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아이는 그 내면에 ‘놀라운
아이(Wonderful Child)’ 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기메꽃” 같은 여자아이는
서서히 자신의 동생을 받아들이는 현실 속에서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아기메꽃" 같은 여자아이는 동생을 받아들이며, 첫째로서 누리던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확대되어가는 가족 구성원의 의미와
역할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터득한 감정의 관리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성숙
하게 처리하게 될 것이다.
가족관계에서 부모와의 갈등과 형제자매간의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성숙’
을 이루게 된다면, 성인이 되어 만나는 다양한 타인들과의 사회관계 속에서 ”
세상이 자기만을 위해 돌고“있다는 미성숙한 태도로 타인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게 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이 아침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