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9. 07:01ㆍ″``°☆시들의모음/◈아침의― 詩
후박나무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 허만하
내가 조용히 바라보았던 것은 잎 진 실가지 그물 틈새로 나무의자 위에 떨어지는 여윈 햇살 부스러기가 아니라, 비어있는 나무의자보다 철저한 나의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녹슨 가시철조망 안에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물겨운 노을.
아. 바깥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추억은 한 발자국 늦게 도착하거나, 끝내 도착하지 않는다.
가시철조망 안에서 추억은 가슴저리게 그리운 과거에 대한 아늑한 그리움이 아니다. 추억은 고문이다. 암록색 천막건물 앞 외로운 후박나무에 기대어
길이만 있고 부피가 없는 선분의 잔인한 성격을 생각한다. 아. 부피가 없는 선분의 이쪽과 저쪽
-계간 '시와사상' 2011년 겨울호에서-
▶허만하=1932년 대구 출생. 1957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야생의 꽃' 등.
느긋한 기다림은 뜨거운 열망의 지혜이고 꿈이고 미학이다. 돌아보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 그리움 담긴 계절도, 애틋한 사랑도, 사진작가의 숨죽인 앵글도, 화가의 텅 빈 화폭도, 날이 갈수록 그 가치를 높이는 선조들의 발효식품 문화도 오로지 기다림으로 비롯하여 빚어진 것 아닌가. 강태공의 낚싯줄처럼 질감조차 없는 기다림은 노을빛 애절함일 뿐, 기나 긴 선분의 잔인함으로 한없이 이어가기만 한다. 오정환·시인 국제신문2012-07-09 22:29
http://blog.daum.net/kdm2141/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