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발목으로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진흙의 깊은 수렁 어떻게 건너왔는지
뿌리 깊은 마음의 상처들이 얼마나
큰 구멍으로 자릴 잡았는지
아는 이 누구 하나 없다고
울다 눈물 걷으며
하늘을 향해
쭉 고개를 든
불 밝힌 연등 하나.
- 성선경의 '연밭에서' (시집 '몽유도원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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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경 시인
며칠 전 우연히 겨울 연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해 질 녘이었고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가슴이 아프고 외로움이
깊던 날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수많은 소식들로 넘쳐납니다. 귓가에 스쳐 가 버리는
소식도 있고, 귓속으로 깊이 들어와 심중을 울리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 많은 소식을 누구와 나눌까요. 누구와 마주앉아 점점 깊어가는 시간의 색에 대해
대화를 나눌까요. 해 질 녘 겨울 연밭에서 '진흙의 깊은 수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수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 '뿌리 깊은 마음의 상처들'은
빛나는 검은색입니다. 자신의 몸에 '연등 하나' 켜놓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박서영/시인 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