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도
-장옥관-
복숭아 씨앗 속에 숨은
도두桃두 한 마리
이리 꿈틀
저리 꿈틀
대륙의 산맥이 수축하고 팽창한다
-장옥관 '파도'('유심' 12월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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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시인=1955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등이 있음.
2004년 제15회 김달진문학상과 2007 제3회 일연문학상 수상
'도두'란 복숭아 씨앗이나 복숭아나무를 갉아 먹는 좀벌레를 뜻한다.
탐스러운 애벌레의 꿈틀거리는 율동감과 씨앗의 주름, 여기서 대뜸 시인은 파도를
떠올린다. "이리 꿈틀/저리 꿈틀"하는 벌레의 율동은 곧 파도의 율동으로 환치된다.
다시 여기서 시인의 상상력은 크게 비약한다. 주름 잡힌 지구의 산맥들은 파도의
율동으로, 그것은 애초의 벌레의 율동이나 복숭아 씨앗의 주름이 크게 확장된
상태라 볼 수 있다.
지금 파도는 복숭아 씨앗 속에서 일고 대륙의 표면에서도 일고 있다. 이 시의 재미는
파도를 현상적 파도에서만 보지 않고 작은 도두의 율동, 복숭아 씨앗의주름, 나아가
대륙의 주름인 산맥들의 모습에서까지 파도의 율동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인은 파도란 사물에 대한 일차적 관찰에서 눈을 떼어 그와 유사성이
있는 다른 사물을 끌고 와 처음의 사물과 연결지어줌으로써 사물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켜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물의 표면에서 이는 물결이라는 파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파도와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시인은 시적 은유(파도=벌레의 꿈틀거림,
산맥의 수축과 팽창)를 시 문맥의 적재적소에 배치해 두어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다.
이해웅/시인
busan.com-201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