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작 / 정경화
그대에게 가는 길은 내 절반을 쪼개는 일 시퍼런 도끼날이 숲을 죄다 흔들어도 하얗게 드러난 살결은 흰 꽃처럼 부시다
그대 곁에 남는 길은 불씨 한 점 살리는 일 바람이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춤사위에 외마디 비명을 감춘 채 아낌없이 사위어 간다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은 기어이 재가 되는 일 화농으로 굳은 상처 달빛으로 닦다 보면 비로소 쌓이는 적멸, 솔씨 하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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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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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1961년 대구 출생
2001년 동아일보,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시집 『풀잎』 한결시조동인
추위가 벌써부터 시퍼렇다. 겨울 채비에 바쁠 때 덜 마른 나무라도 많이 쪼개야 했다.
나무 때던 시절 얘기지만, 뒤란이며 마당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작은 겨울 양식같이
든든했다. 나무들 속살이며 무늬도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절 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 장작은 불이요 꽃이다. 보고 있으면 모닥불 추억처럼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그대에게 가는 길'과 '그대 곁에 남는 길'과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이 장작불로 다 모이는가. '절반을 쪼개'고 '불씨 한 점'을 살려내서 '기어이 재'가 되는 길. 그런 전소(全燒)의 깨끗한 사랑도 있지만 장작은 군고구마의 구수한 추억도 주었다. 찬바람
드셀수록 장작불 함께 쬐던 벗들이며 군고구마 같은 마음들이 그립다. 정수자.시조시인 Chosun.com-201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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