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 정영태
젖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가는 꿈들,
김을 딛고 천정을 건너가는 꿈들,
헛딛고 떨어지다가
천정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꿈들,
기지개를 켜는 內臟들,
頭蓋骨 안에서 출렁이는 湖水들,
비치는 것은 모두 아름답구나
좋아, 이 세상은
김 속에 눕거나 앉아서
즐거운 꿈을 꾼다
배를 내밀고 가는 꿈들,
젖은 발로 뒤뚱대는 졸음,
虛空을 채워가는 식은 물방울 사이로
조심조심 건너가는 꿈들과
꿈꾸는 아름다운 內臟들
-정영태 '사우나'(회고시선집 '우주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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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의식과 무의식이 적절히 교직된 시는 때론 독자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하지만 읽는
재미를 한층 북돋워 주기도 한다. 일상의 잡다한 일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오거나
작취미성으로 전날 밤의 술기운이 남았을 때 이따금 찾기도 하는 목욕탕에서 시인은
한순간 온탕 위로 끊임없이 날아오르는 작은 물방울들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이다. 이 시에서 수증기의 물방울은 꿈으로 환치되어 있고, 그 꿈을 따라 파생되는
이미지를 시인은 계속 두레박으로 물을 긷듯 건져 올리고 있다.
수증기의 물방울은 곧장 천장을 건너가기도 하지만 간신히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도
곤두박질쳐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의식세계의 현상적 관찰이 있는가 하면 체내의
내장이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자신의 두개골 안에서 출렁이는 호수를 만나기도 한다.
이런 활동들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무의식의 활동들이다. 목욕을 통해 세심
(洗心)하러간 시인은 애초의 의도는 증발되어 버리고 물방울이 만드는 꿈속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상상을 따라가고 있다.
이해웅 시인
busan.com-2013-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