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 김이듬
그때 눈보라 속 가쁜 숨결로 눈부시게 밝은 나무 곁을 지났을 때 너는 말했지 마지막 날이네 벌써 한해도 끝나버렸어 모아 쥔 손을 풀어 흔들며 넌 어디로 갔니
그때 화려하게 빛나던 트리 장식 그녀의 창가를 지날 때 입김에 녹아가던 두 손을 놓아두고 사라진 너는 중얼거렸겠지 시작한 적도 없잖아 뒤로 걸으며 나는 저지난밤에 썼던 카드를 구겼네
송년파티 초대장이 속속 오고 첫날을 새해를 기대하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단지 비슷한 하루가 되풀이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전구들 친친 감은 나뭇가지를 비껴 작은 새 날아가고 폭죽을 피해 어둠은 정교하게 번져가네 내 마음 속 검은 저수지에 눈보라 쏟아지는데 또다시 이 물결은 누가 일으켰는가 그때 촛불 아래 왼손으로 나의 뺨을 만질 때 그때 끝도 시작도 모른 채 마음을 싣고 안으로 안으로 깊이 들어가던 저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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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시작노트〉 왜 사랑하는가? 왜 쓰는가? 안녕하신가? 그런 건 머리론 결코 알 수 없는 것. kookje.co.kr-2013-12-22
http://blog.daum.net/kdm2141/3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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