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수 / 손세실리아
산업연수원생 자격으로 한국에 와 사랑에 빠진 타잉 훙과 남 프엉은 둘 만의 부부서약을 마친 뒤 쪽방 얻어 신방 차리기로 합의했는데
본국에 송금하고 월세내고 나니 빈털터리인 거 최소한의 세간 장만할 여력조차 막막한 거라
궁리궁리 끝에 공단 인근 모텔 빈 객실에 잠입해 집기 훔쳐 나오다 붙잡혀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장물내역을 기록하던 경장 쯧쯧… 쯧쯧…… 혀만 차는 거라
신랑은 긴 생머리 신부를 위해 헤어드라이기와 업소용 샴푸린스를 신부는 잠 많은 신랑을 위해 디지털 알람 벽시계를
-'쿨투라'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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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실리아=1963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기차를 놓치다' 등.
이건 영락없는 오 헨리의 한국판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여자는 긴 머리칼을 잘라 남자의 시곗줄을 사고, 남자는 아끼던 시계를 팔아 여자의 빗을 사는 두 연인의 가슴 찡한 이야기. 사랑이란 이렇듯 나보다 먼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 아닌가.
부디 머나먼 이국땅에 돈 벌러와 경찰서를 예식장 삼아 신접살림을 차린 타잉 훙 남 프엉 부부여, 찬바람 한 점 숨 돌리고 갈 틈도 없을 서너 평 쪽방이지만 서로의 체온을 보듬어 이 겨울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훗날 알콩달콩 단란한 가정 일구어 옛날 얘기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이 꼭 오기를. 고증식·시인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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