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 천 수 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시 전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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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1922~2004)=경남 통영 출생.
시집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등.
이 꿈 같은 풍경에서 의미를 찾지 말자. 그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자. 3월에
내리는 눈은 느닷없다. 삶의 비극도 느닷없다. 내리는 눈이 잠시 세상을 덮지만
그것으로 삶의 아픔을 덮을 수는 없다.
우리가 그림같이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이 땅의 삶이 상처와 비극
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애도를 넘어선 우울증에서 벗어나야 하고, 산
사람은 저 너머, 다른 시공의 꿈을 빌려서라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정란·시인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