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 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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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1946~94)전남 해남군 출생
시집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
시선집'사랑의 무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학살' 등
신동엽창작기금상(1991), 단재문학상
(1992), 윤상원 문학상(1993)
올해는 여름이 서둘러 달려왔다. 자외선 경보까지 발령되어, 햇볕에 노출되면 당장
피부암이라도 걸릴 것처럼 기상예보가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삶에는 언제나 명암이
있어서, 어둠과 그늘 속에서 밝은 햇살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감옥에 갇혀 있는 수인들은 햇볕을 제대로 쏘이지 못해 고통스럽다. 제5공화국 치하
에서 10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던 김남주 시인은 6·10 민주화 항쟁 다음 해에 출옥했다.
옥중에서 쓴 이 시에 햇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안타깝고 간절하게 나타나 있다.
아마도 한 줄기 민주화의 햇살이 아니었을까.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