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팽이가 팽팽 돌다가 쓰러져
오래 잠드는 것처럼
오늘 밤도 느릿느릿 달팽이는 기어서
어느 꽃그늘 아래 잠드는가

일러스트-유재일
------------------------------------------------------------

▶박정남=(1951~ )경북 구미에서 출생.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숯검정이 여자』『길은 붉고 따뜻하다』
『이팝나무 길을 가다』『명자』등이 있음.
현재 대구 효성여고 교사와 대구대 강사이며
대구시인협회장으로 활동.
이불과 몇 가지의 옷을 들고 다니는 노숙인을 본 적 많다. 큰 다리 아래서, 소공원
벤치에서, 지하도에서. 그들의 깡마르고 검은 얼굴에 흐르는 불안을 본 적 많다.
이 시는 한뎃잠을 자는 사람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가옥(家屋)을 머리 위에 보따리
처럼 이고 다니고 있다. 열고 들어설 문짝도 없는 빈 껍데기의 집이다. 팽이가 아찔
하게 돌다 쓰러지듯이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꽃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
이 생기 없는 노숙자의 초상(肖像)은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정처
없이 유랑하고, 가파른 생의 비탈에서 두글두글 굴러 내린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과
이해라는 집채의 바깥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노숙한다.
문태준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