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 버린 집이 요즘
꿈속에 나타나 온다
할머니 어머니가 사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허물어버리면 안 될 집을 허물어버렸다
그 할머니 어머니 꿈속에 없어도
그 집이 꿈속에 나타나 온다
대추나무 당유자나무 후피향나무(…)
저 멀리 혀 빼물고 헬레헬레
진돗개 진구가 나타나 온다
시간이 사라져 없는 풍경 속으로
오늘도 들어가 바라보다가 나도
풍경이 된다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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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성(1938~ )제주에서 출생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했다.
시집 <제주바다>,<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허공>,
<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백 년 동안 내리는 눈>을 냈다.
현재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직을 맡고 있다.
꿈을 꾸지 않고 대여섯 시간을 내리 잘 수 있으면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몸이 불편
하거나 마음이 괴로운 날 밤에는 뒤숭숭한 꿈에 시달리기 쉽다.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인물보다는 장소가 꿈에 자주 나타난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에 본 곳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다. 어렸을 때 살던 집·방·마당·
골목길이 흑백영화 영상처럼 떠오른다. 가끔씩 고인이 된 식구들도 만나지만, 그들은
절대로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꿈속의 해후가 더욱 안타까워지고, 풍경만 어슴푸레 잔영으로
남는다. 그 빛바랜 기억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꿈인가, 삶인가.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