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비애
-박라연-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단명한 친구는
아침 이슬이라도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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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라연=(1951~ )전남 보성에서 출생.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에 사는평강공주〉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빛의 사서함』등이 있음.
메디컬 다큐멘터리를 보면, 의약의 급속한 발전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는 이제 머지않은 것 같다. 결국 노년의 투병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온전치 못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 살기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뜻 넘어설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다.
가족들이 환자를 이승에 붙잡아 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도 임종을 인위적 으로 연기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누구도 어느 가족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를 넘어서, “몸이 생각을 버릴 때”가 되어도 의약에 의존해 고통을 연장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7.08
http://blog.daum.net/kdm2141/4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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