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결에 맞추어 잘 쪼아낸
글씨를 보면
돌을 파서 글자를 새긴 것이 아니라
글자를 끌어안고 돌의 결이
몸부림 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기억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같은 (…)
목숨이 제 결을 따라
고꾸라진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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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1945~)서울에서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빈집을 지키며』, 『라자로 마을의 새벽』,
『그때도 그랬을 거다』, 『파랑 눈썹』 등이 있음.
1985년 『라자로 마을의 새벽』제17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파리의 로댕박물관에는 조각가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커다란 육면체 암석의 윗부분에 여인의 두상을 조각하다가 중단한 작품을 보고
탄성을 금할 수 없었다.
물속에서 얼굴이 솟아 올라오듯, 돌 속에서 머리와 이마와 윗눈썹이 떠오르다가
멎은 모습이었다. 이 미완성 작품은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오래된 비석을 보면 손으로 쓰다듬는’ 조창환 시인의 버릇도 비슷한 체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게 만지고 싶은 작품에는 꼭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