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우편함
-최승호-
가재가 우편함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빌라 계단을 올라가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 줄무늬
소인 찍힌
백칠십 원짜리 우표 속의
가재,
두 집게발을 엉성하게
어정쩡하게 바닥에 내려놓고 곁눈질하는
가재여,
모처럼 고향에서 편지를 보냈구나.
네가 납세고지서를 물고 날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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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1954~ )1977년 시 〈비발디〉시단에 데뷔
시집《대설주의보》《반딧불 보호구역》《모래인간》《아메바》
산문집《달마의 침묵》《시인의 사랑》
「오늘의 작가상」,「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을 수상
오늘은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부가세 4600원을 냈다. 자동차에 7만원어치 기름을
넣으니 그중 6300원이 세금이었다. 쌀·고구마·사과·달걀·휴지 등 생필품을 사고 세금
3800원을 냈다.
우리처럼 평범한 시민들은 근로소득세 말고도 하루 평균 최소 1만원에서 1만5000원
내외의 간접세를 내며 살고 있다. 월말에는 몇 십만원의 세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달도 있다.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모두들 착하게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약소한 원고료에도 물론 세금이 붙는다. 고향에서는 아무런 우편물도 오지
않지만, 납세고지서는 어김없이 날아온다. 시인은 세금 액수보다는 소인 찍힌 우표의
집게발 가재 그림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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