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도 타지 않았다
돌로 찧어도 깨어지지 않았다
고운 뼈 하나를 발라내어
구멍을 뚫었다
입을 대고 부니 미묘한 소리가 났다 (…)
번뇌를 달래는 힘이 있었다 (…)
고통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힘
오직 사람의 뼈이어야만 했다
평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아
그 괴로움이 뭉치고 뭉쳐
단단하고 단단하게 굳어진 것이어야만 했다 (…)
견고한 피리 하나가 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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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1947~ )1947년 부산 출생.
1968년 〈신아일보〉와 〈불교신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성 수요일의 저녁》 《짧은 사랑》 《떠남》 《내 영혼은》
《지금은 슬퍼할 때》 《금지된 장난》 《아쉬움에 대하여》
《성자가 된 개》 《여행의 끝》 《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
《주머니 속의 여자》 《사랑하는 아들아》 《심장과 뼈》 등
KBS, SBS 기자로 재직. 시와시학회장, 지용회장 역임.
맑고 부드러운 소리로 듣는 사람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목관악기 가운데 피리를 빼놓을
수 없다. 피리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여 옛날부터 널리 사랑받는 악기다. 보통 대나무
로 많이 만드는데, 이 시에는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가 등장한다.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의 늙은 고승이 더러
인골(人骨) 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이나 조장(鳥葬)을 하는
고장 이니, 타지 않고 깨어지지 않고 남은 인골을 얻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고통과 번뇌가 한평생 쌓여 단단하게 뭉치고 굳어진 뼈의 진수에서 과연 얼마나 그윽
하고 미묘한 소리가 울려 나올지….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