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참빗 같은 손이 그의 뇌 속까지 들어올 수 있을까 (…)
그는 머리카락이 가득 찬
뇌를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한다 그 밤 그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청했는데 폭발이 일어난다
머리카락을 더 이상 누를 수 없었던 뇌가 그를
배반한 것이다 사람들은 가엾은 그의 조각난 머리 주변에
몰려들어 그가 대머리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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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정=(1967~ )강원도 정선에서 출생.
강원대 사학과 졸업.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가 있음
당신의 청춘을 위협하는 칼이 있다. 하루 종일 당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머리칼.
한 올 한 올의 머리칼이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채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빗질과 함께 단체로 떠나가고 바람에 들썩거릴 때마다 당신을 애타게 하는 머리칼.
애인보다 더 붙잡고 싶은 머리칼.
당신에게 대머리라는 이름표를 붙여준 머리칼. 머릿속을 가득 채운 머리칼로 폭발
직전인 당신. 그러나 속절없는 세월이다. 속절없는 머리칼을 당신이 순순히 떠나보낼
수 있을 때, 어느 날 참빗 같은 손이 내려와 당신의 머릿속에 엉킨 머리칼을 빗겨주고
당신의 머리를 폭발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