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김언희⊙
책을 끝내는 것은 아이를 뒤뜰로 데려가 총으로 쏴버리는 것과 같아, 카포티가 말했습니다.
은둔자는 늙어가면서 악마가 되지, 뒤샹이 말했습니다. 웃다가 죽은 해골들은 웃어서 죽음을 미치게 한다네, 내가 말했습니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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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1953~ )진주에서 출생.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는『트렁크』(세계사, 1995)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뜻밖의 대답 』(민음사, 2005)이 있음. 2004년 박인환 문학상 특별상 수상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사활을 걸고 열정적으로 밀어붙이는 타입과 그렇지 못한 타입. 시 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편의 시 혹은 시집을 완성 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한 책임자가 되어 시작의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냉철한 판단 을 통해 산고의 결과물을 얻었을 때,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패기의 동료가 있다면 더 없이 든든하고 자랑 스러울 것이다.
이 글이 실린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의 한 편의 시와 같은 에필로그를 인용해본다. ‘(…) 네 원수는 벌써 너를 잊었다. 네 성기조차도 너를 잊었다. 너는 가공의 하늘에 떠 있는 가공의 구름이다. 마술사가 너를 무대 위의 허공에 둥둥 떠 있게 하고는 그냥 가버렸다’. 무대 위의 허공에 홀로 떠 있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어보시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09.15
http://blog.daum.net/kdm2141/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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