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
▶이원=(1968~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시간과 비닐 봉지〉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가 있음.
'현대시학' 작품상(2002)과 '현대시' 작품상(2005)을 수상.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누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등 뒤로 검은 형상이 보인다고 했다.
검은 형상이 하는 얘기가 들린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누나를 찾아가 자식들의 장래나
앞으로의 운에 대해 묻기도 했다.
누나는 그들의 검은 형상의 사연을 듣고 조언을 해주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가 보았던 검은 형상은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살아가는 동안 몸의 시간과 무게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그림자, 못다 한 말이 있어 세상을 떠날 때 남겨두고
간 그림자.
그림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누나가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누나에게 생전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림자가 그림자에게 전해주었으면….
사랑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림자의 고독한 힘줄을 바라보는 누나가, 시인이 곁에
있다고.
＜황병승·시인＞
joins.com/201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