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갱이가 한 화분 속에서
한 덩어리 되어 한 뿌리를 살리는 것이다
한 방울이 한 뿌리로 스며
한 송이를 피우는 것이다
한 덩어리 속에서
한 알갱이는 가만히 잊어져야 더 좋은 것이다
일러스트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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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1942~)경남 통영에서 출생
1967년 부산대를 졸업했다.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괄호 속의 귀뚜라미》《구절리 바람소리》
《내 눈앞의 전선》山詩集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2003년 제4회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작고 동그랗고 단단한 흙 알갱이가 식물의 뿌리를 살린다. 작고 둥글게 맺힌 한 방울의
물이 뿌리를 적셔 살리고 꽃을 피운다. 시인이 시 '흙의 건축 2'에서 썼듯이 "흙은 제 몸
의 물기를 모두 짜서 작은 식물에게 먹였던 것"이다.
흙은 식물의 실뿌리들을 껴안아 천천히 그러나 노련하게 식물을 살려내고, 살아 있게
한다. 그러나 흙은 식물을 살리고 스미고 피우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식물의 일부
가 되어 잊히게 함으로써 건축을 완성한다.
자연인 흙과 또 다른 자연인 식물과의 관계는 서로 혜택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식물은 흙으로부터 시혜를 받는다. 자신을 헐어 다른, 산 것을 무성케 하는 것
이 흙의 건축학이다. 흙은 자신의 기운과 활력을 흙 아닌 것을 위해 사용한다. 흙은
생명의 어머니이다.
문태준 | 시인
Chosun.com/2014.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