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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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1955~)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동인
시집 『밤에 쓰는 편지』『가만히 좋아하는』등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1987)과 제50회 현대문학상(2005)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늘 하루 늦게 도착하는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입고 먹이를 얻고 집도 이루었다.
옷가지를 벗기고 누인 나를 내가 내려다보게 되었을 때, 애써 잊고 있던 노숙의 나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내가 나를 가만히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
그때 어떤가 몸이여, 묻지 말아야 했다. 묻는다는 것은 내가 나를 달래며 다시 헌 신
문지 같은 옷가지를 입히는 행위. 다음 추위도 참아낼 수 있지, 옹이 진 손이 옹이 진
발에게 건너가는 시간. 날것을 헤집는 바람도 있지만 날것을 감싸는 바람도 있다는 말.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