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dlelight-Carl Doy
식탁의 목적, 물컵
◇이승희◇
너무 먼 끝은 끝이 아니어서
식탁 끝에 앉아 있는 당신은 내게 없는 사람.
나는 물잔을 쓰러트린다.
물이 흘러가지 못하고
해안선처럼 머뭇댄다고 편지를 쓴다.
편지들이 식탁을 지나는 동안
식물들은 골목마다 나와서 햇살에 몸을 늘인다.
온몸을 벌겋게 악화시킨다.
너무 빨리 지나친 것들이 있지.
구부러진 숟가락이 그렇지.
바닥에서 떨어진 오래된 두 발이 그렇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여름을 맞은 편지들이 있지.
말라서 죽은 편지들의 마지막 문장이 그렇지.
나는 다시 얼굴에 가득 별을 쏟아 붓고
식탁의 끝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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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1965~ )경북 상주에서 출생.
1997년 《시와 사람》에 〈집에 오니 집이 없고〉당선,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풀과 함께〉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가 있음
식탁에 혼자 앉으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가 또 한 번 아득해진다. 당신은 내게 없는
사람. 식탁이 쭉쭉 늘어나 내게 없는 당신에게 가 닿았으면…. 머뭇거리며 흘러가지
못하는 식탁의 물이 나의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구부러진 숟가락이, 바닥에서 떨어진 오래된 두 발이, 국경을 넘지 못한 편지들이 이곳
저곳을 떠돌다 다시 돌아올 때, 뚝뚝 식탁 끝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처럼
당신에게 한 번도 건넬 수 없었던 한마디의 말처럼….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