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가 오면
⊙이성복⊙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微動)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微動)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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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1952~ )경북 상주 출생
-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아, 입이 없는 것들'
-82년 김수영문학상, 90년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후보작 ''아, 입이 없는 것들'-보유(補遺)' 외 2편
대학 시절 어머니는 늘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드렸다. 거실 한쪽에 모셔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묵주를 돌리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잠결에 들려오는 빗소리에
젖어 깨어보면 어머니의 기도소리였다.
기도의 끝은 언제나 시를 쓰겠다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아들
에 대한 걱정과 연민이었다. 내가 빗소리에 젖을 때 빗물에 잠겨 있었을 어머니. 지난밤
에는 잠결에 들려오던 빗소리가 어머니의 기도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