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을 그랬습니다 어느덧 할머니 당신이
정거장에서 나를 기다리며
그 늙은 구름들이 묻힌 땅을 밟고 서(…)
오늘은 몇 박스나 팔았느냐
몇 박스의 땀을 흘렸느냐(…)
어쩌면 내가 묻어준 그 늙은 구름들 속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몇 박스의 꿈들도 묻혔나 봅니다(…)
이제 마중 나오지 마요 나도 이제 어른이에요
이 늙은 구름들을 묻은 정거장 담벼락 아래
할머니와 나는 맞담배를 태우고 오늘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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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1979~2005)경북 문경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무도마'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요절한 시인들이 있다. 신기섭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그를 사랑했던 지인들의 도움
으로 『분홍색 흐느낌』이라는 제목의 유고시집이 출간되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아름다운 시편들이 이 세상에 남았다. 시인이여, 늙고 아픈 구름
들을 묻은 정거장에서 할머니와 고단한 삶을 살다간 젊은 시인이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낮게 뜬 달을 당신과 함께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