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서 -박덕규-
나는 가끔 소리 내 책을 읽는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 해서 목이 멜 때가 있다. 무슨 슬픈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에 누워 책을 소리 내 읽고 있는데 뒤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어느 대목에선가 쯧쯧 딱하지, 하고 혀를 차셨다.
그 소리가 책 읽고 있는 내 귓전에 울리곤 해서다. 돌아봐도 어머니가 뒤에 앉아 계시지 않다는 걸 내 몸이 어김없이 알아서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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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1958~ )경북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0년 ‘시운동’ 창간호에 시 발표,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1994년 ‘상상’에 소설 발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아름다운 사냥> <꿈꾸는 보초>
소리 내서 책을 읽고 있는 고등학생이 있다. 뒤편에는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가 앉아 계신다. 어머니는 글의 한 대목에서 남의 딱한 형편이 당신의 일인 듯 마음이 아프고 가여워 혀를 차신다. 어머니의 그 안쓰러워하는 소리를 아들이 듣는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몸과 마음의 주고받음이 있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글 읽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렁우렁 울려오는 소리였을 것이다. 아들에게 어머니의 혀 차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자상한 마음이 들려주는 공감의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소리 내서 책을 읽다 돌아봐도 그 옛날의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나의 학창 시절에 나의 어머니도 나의 글 읽는 소리를 즐겨 들으셨다. 글 읽는 소리 뒤편에 앉아 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셨다. 뒤돌아보았을 때 어머니의 온 얼굴에는 봄 같은 미소가 가득하셨다.
문태준 시인 |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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