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직 -유자효-
너에게 내 사랑을 함빡 주지 못했으니
너는 아직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사랑을 너에게 함빡 주는 것이다
보라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도
그들의 사랑을 함빡 주고 가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그들의 사랑이 소진됐을 때
재처럼 사그라져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너는 내 사랑을 함빡 받지 못했으니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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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1947~ )부산 출생.
1968년 〈신아일보〉와 〈불교신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성 수요일의 저녁》 《짧은 사랑》 《떠남》 《내 영혼은》
《지금은 슬퍼할 때》 《금지된 장난》 《아쉬움에 대하여》
《성자가 된 개》 《여행의 끝》 《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
《주머니 속의 여자》 《사랑하는 아들아》 《심장과 뼈》 등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편운문학상, 한국문학상 등 수상.
KBS, SBS 기자로 재직. 시와시학회장, 지용회장 역임.
'함빡'이라는 말 참 좋다. 차고도 남도록 넉넉하다는 뜻이다. 물이 겉으로까지 스며
나와 젖는다는 뜻이다. 넘쳐 흐르도록 가득가득한 상태를 뜻하니, 정을 이처럼 준다
는 것에는 성심으로 혼신을 다한다는 뜻이 있다.
시인은 사랑을 할 때에도 함빡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 미진한 게 남아 있지 않
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슴에 저장되어 있는 사랑의 총량을 다 소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랑의 불을 다 써서 없애기 전까지는 재처럼 사늘하게 사그라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새, 한 송이의 꽃도 사랑을 함빡 주고 간다는데 우리는 과연 무슨 일에 밤
낮없이 땀을 쏟는 것일까. 새처럼 이 세상에 미성(美聲)을 보태지도 않고, 꽃처럼 이
세상에 미색(美色)을 보태지도 않고.
문태준 시인 |
Chosun.com/201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