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창녀
◇김이듬◇
(…) 부스스 펜을 꺼낸다 졸린다 펜을 물고 입술을 넘쳐 잉크가 번지는 줄 모르고 코를 훌쩍이며 강가에 앉아 뭔가를 쓴다 나는 내가 쓴 시 몇 줄에 묶였다 드디어 시에 결박되었다고 믿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눈앞에서 마귀가 바지를 내리고 빨면 시 한 줄을 주지 악마라도 빨고 또 빨고, 계속해서 빨 심정이 된다 자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절박하지 않게 치욕적인 감정도 없이 커다란 펜을 문 채 나는 빤다 시가 쏟아질 때까지
나는 감정 갈보, 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면 창녀라고 자백하는 기분이다 조상 중에 자신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너처럼 나쁜 피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펜을 불끈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지금 지방축제가 한창인 달밤에 늙은 천기(賤技)가 되어 양손에 칼을 들고 춤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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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1966~)경남 진주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수상
뭐가 이상한가? 흔한 집안 내력이 있다. 예술이 될 수 없는 귀기와 될 수 있는 천기가 있다. 농촌과 도시 감수성의 첨단의 몸인, 육체노동자인 창녀와, 정신노동자인 시인만 있지 않고 그 사이 구체(具體)라는 악마가 있다. 진짜 놀라운 것은 이 시인이 자신의 일탈을 운용하며 생애-시간을 심화-확대하는 원숙한 기법. 시가, 스스로 미친 줄 아는 시인이 자기도 모르게 제정신으로 쓰는 것이듯.
<김정환·시인> joins.com/2015.01.05
http://blog.daum.net/kdm2141/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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