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결심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넜으되 다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창들 먼지에 다치거나 내 어금니에 혀 물린 날 더 많았으되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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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1959∼ )서울에서 출생.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비망록〉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쉬잇, 나의 세컨드는』『고통을 달래는 순서』와 사진 에세이집 『바다 내게로 오다』가 있음.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인간의 난관과 불행은 땅에서 벗어나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살고, 초저녁 별들보다 더 많은 등을 켜는 것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건물들이 높아졌 다고 인류의 꿈이 더 높아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백열등이 발명된 뒤 인류 평균 수면시간은 한 시간이나 줄었다 한다.
수단은 진보했으나 목표는 한 뼘도 더 높아지지 못한 탓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물건들을 사들이고 더 큰 집에 살아도 기쁨과 보람이 늘지는 않는다.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 고양이들아, 벌이가 시원치 않고, 누추한 집에 산다고, 삶이 밋
밋하다고 상처받지 말라.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날의 삶에 자족하고 범사에 기뻐하며 웃어라. 웃고 노래하고 춤추라! 행복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 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3.09
http://blog.daum.net/kdm2141/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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