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4월이여, 너는 어쩌자고 다시 돌아오는가? 아름다움으로 족한 건 아니다. 끈끈하게 움트는 작은 이파리의 붉은색으로 더 이상 나를 달랠 순 없지.
나도 내가 아는 게 뭔지는 알지. 뾰족한 크로커스꽃잎을 바라볼 때면 목덜미에 햇살이 따사롭다. 흙냄새도 좋다. 죽음이 사리진 것 같구나.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땅 밑에선 구더기가 죽은 이의 뇌수를 갉아먹는다, 그뿐인가. 인생은 그 자체가 무(無), 빈 잔, 주단 깔리지 않은 계단일 뿐.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4월이 재잘거리고 꽃 뿌리며 백치처럼 온다 한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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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나 빈센트 밀레이=(1892~1950) 미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산문 작업을 할 때에는 낸시 보이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시 부문에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 1928년 순회낭독회를 하는 동안 시카고에서 조지 딜런이라는 젊은 시인을 만나 한눈에 반한다 그들의 연애사건은 불꽃처럼 타올라 밀레이는 파리로 간다 남편 유진은 돌아오라 애원한다 그녀의 무모한 행동은 시의 바탕이 되었던 정서적인 혼란을 일으키려는 충동이 있었다 <치명적 인터뷰>를 발표한다
1980년대, 출판사를 경영할 때 시인 최승자가 영문판 시집을 들고 와 번역해 내자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빈센트 밀레이 시집이다. 인생을 암울한 눈으로 보았던 밀레이는
4월이 재잘대며 도처에 꽃 뿌리며 돌아온다고 썼다.
지난해 4월, 큰 재난을 겪고, 나라가 비탄에 잠겼었다. 4월은 어쩌자고 다시 돌아오는가! 아직도 솟는 눈물 마르기에는 꽃피는 4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잔인한 4월아! 백치 같은 4월아! 찢긴 우리 가슴 아물게 꽃으로 문질러다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4.02
http://blog.daum.net/kdm2141/5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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